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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논술에 대한 단상

관리자 | 2015-09-18 17:21:17

조회수 : 12,513

 
대한민국 입시 논술, 현재와 미래
 
- 독해력 측정하고 정답 찾기 요구하는 우리나라 대입 논술은 ‘국어’ 시험
- 창의적 사고 평가하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는 ‘논술’ 시험
- 당대 현안에 대한 해결책 요구했던 조선시대 ‘논술’ 시험으로 돌아가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른바 ‘물수능’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대학별고사(논술․구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수능의 변별력이 약해지자 보다 더 확실한 변별요소로 논․구술의 영향력이 늘어난 때문이다. 한편 논술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현행 논술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현행 방식으로는 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입 논술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를 모델로 삼았지만 내용은 그와 전혀 다르다.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처럼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창의적으로 펼쳐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지문을 독해하고 답을 찾아 서술하는 ‘국어’ 시험에 가깝다.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는 ‘정답’이 없지만 우리나라 논술고사는 ‘정답’이 있다.
바칼로레아는 문학, 철학, 사회, 과학 등 3~5개 과목을 치르는데, 과목당 2~4개 문항이 주어지고 그중 한 문항을 선택하여 2~4시간 정도 논술하는 형태이다.
 
Q.정치 행위는 역사 인식에 이끌려 가야 하나?
Q.우리는 기술로부터 무엇을 기다리나?
Q.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는 것인가?
이런 형태의 문제 풀이가 가능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읽고 요악하고 비판하는 훈련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어려서부터 반복적인 글쓰기 연습과 체계적인 사고력, 독서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아비투어 필기시험은 필수 기본과목과 대학전공과 관련된 중점과목 등 4개 과목을, 과목당 4~5시간씩 총 20여 시간동안 시험을 치른다.
 
Q.9세기 독일 문학이론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논의가 차지하는 의의를 약술하고 임의의 독일희곡 작품을 들어 거기에 나타난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논하라.
독일 학교의 수업방식은 대부분 토론 위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숙제 역시 논술형이므로이런 형태의 시험이 가능하다.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의 논술시험 문제도 다르지 않다.
 
Q.현재의 재정 상태를 설명하면서 고질적인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들을 비교 논술하라 - 영국 대학입학자격시험 GCE(General Certificate of Education).
Q.자신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이며, 그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서술하라 - 미국 하버드대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이른바 논술 선진국의 논술 유형은 이처럼 자유롭고 열린 사고로 창의적 답안 작성을 요구한다.
 
초․중․고 토론식 수업 서술형 평가 도입, 대입 논술은 아직도 제자리걸음
우리나라 논술은 어떨까. 주제만을 제시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논술하도록 하는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와는 전혀 다르다.
 
자료나 읽을거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
우리나라 논술은 특정 주제에 대한 자료나 읽을거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답안이 요구하는 방향이나 논의의 범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유형이다. 논술시험이 아니라 국어시험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개정된 초․중․고 교육과정은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과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키우기 위해 교과를 넘나드는 주제 중심 토론식 수업, 서술․논술형 평가 등으로 선진 교육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반면, 대입 논술은 1990년대 도입 초기의 자료 제시형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나 독일을 마냥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 못지않은 우리 전통의 논술고사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조선시대 치러진 과거시험 중 책문(策問)이라는 것이 있었다. 오늘날 대입 논술과 같은 거지만 열린사고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겠다.
 
Q.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 1447년(세종 29), 문과 중시.
Q. 외교관은 어떠한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 1526년(중종 21), 문과.
Q. 교육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 1558년(명종 13), 생원 회시.
Q. 화친이냐 정벌이냐 - 1568년(선조 1), 증광 회시.
Q. 지금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 - 1609년 (광해 1), 증광 문과.
 
현행 입시 논술처럼 원하는 답안의 방향과 범위를 제시문을 통해 정해놓고 답안에 근접한 순으로 점수를 매기는 형태가 아니라,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가 180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니 몇 백 년은 앞서는 기록이다. 다만 프랑스는 그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고 우리는 주입식 암기식으로 후퇴한 과오가 있다.
 
다양한 주제경험을 통해 통섭적 사고력과 창의적 표현력 길러야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과정이 토론식 학습, 서술․논술형 평가 시행으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함양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문을 달달 외워서 정답을 맞히는 공부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접하며 관련 도서를 폭넓게 읽고 활발히 토의․토론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일보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초․중․고 교육과정과 동떨어진 입시 논술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개정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풍부한 글 읽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논리적인 글쓰기 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 의사결정 능력,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데 힘써야 한다. 아울러 변별력 약한 수능을 보완하는 장치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권장하고 측정할 수 있는 과정으로써 논술 시험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토의․토론을 통해 길러진 통섭적 사고와 창의적 글쓰기로 펼쳐내는 열린 입시 논술의 도래를 기대한다. 
<토론하는아이들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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